박oo / undefined

2011.10.14

신촌이 아니라 신천

#기타#기타
요청내용 : 서대문에 있는 어느 경찰지구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택시기사와 일본인승객이 왔는데 일단 일본승객이 하는 말을 들어봐달라는 것이었다. 일본인승객은 택시기사에게 커다란 불만을 내뿜었다. 아침에 잠실 옆 신천(일본인 발음은 정확히 신촌)에 있는 숙소에서 아산병원에 택시를 타고 갔었는데 지금(저녁) 돌아가려고 택시를 탔더니 거의 같은 경로를 시간도 몇배가 들었고 요금도 세 배가 넘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숙소가 신천역(신촌역으로 발음함) 근처라서 먹을거리를 역주변에서 사서 숙소로 들어가려고 도중에 신천역(역시 신촌역으로 발음함)으로 가자고 했을 뿐인데 엉뚱한 곳으로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즉 지리가 어두운 외국관광객(자신)에게 택시기사가 바가지를 씌웠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대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것인지 확인을 부탁했다. 현 위치는 신천이 아닌 신촌부근의 경찰지구대였다. 나는 일본인이 한 말을 경찰에게 전했다. 그러자 경찰은 기사아저씨가 그런 사람같지가 않다며 일본인 승객이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신촌과 신천의 발음상의 문제로 추측했다. 그러면서 경찰관은 택시기사와 숙의를 통하여 중재안을 도출했다. 기사아저씨가 송파에서 서대문까지 온 비용만 받고 승객을 다시 신천의 모텔까지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경찰관은 이상의 내용들을 관광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간이 너무 걸려서 당초 내가 하던 일을 완전히 망쳐가고 있었지만 최대한 세심하게 일본인 승객에게 전했다. 그러나 이 아주머니는 이제 더한 분노를 표출했다. 기사아저씨가 완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차를 타기 전에 모텔의 명함을 보여주었는데 어떻게 신천을 가다가 신촌을 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결코 발음상의 착오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기사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며 무섭다고 까지 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제 기사아저씨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상황을 경찰관에게 전하자 경찰관도 나와 기사아저씨가 직접 이야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이제 기사아저씨와 대화를 했다. 물론 말로 사람을 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결코 악덕택시기사가 아닌 분이었다. 신천과 신촌을 잘 못 발음해서 실수를 하는 건 서울사람들에게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런 실수를 악용한 그런 느낌은 분명히 아니었다. 또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그렇겠지만 일본인승객은 통화중에도 신천을 어김없이 신촌이라고 발음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실마리는 그 모텔의 명함이 가지고 있었다. 모텔 명함에는 신천이라는 지명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명함에 적힌 주소는 잠실 몇동 몇번지였다. 그에 따라 기사아저씨는 처음에 잠실의 어느 모텔로 이동중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본승객이 신촌역에 가자고 해서 오게 된 것이다. 잠실에서 택시를 타고 신촌으로 이동하겠다는 관광객이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었을 것이다. 반면 명함에 신천이라는 지명이 적혀 있었다면 신천을 가던 중에 갑자기 신촌역을 가겠다는 승객을 재차 확인했을 가능성은 높았을 듯 하다. 이 내용을 어떻게든 일본인 승객에게 이해시켰다. 옆에 있던 경찰관, 지구대장님도 상황을 모두 이해하게 되었다. 이에 지구대장님은 외국에서 온 관광객인데 괜히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 상하지 않도록 이쯤에서 직접 순찰차로 모텔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일본승객도 택시비 5천원정도만 내주시고 기사님도 그 정도만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해로 뒤틀린 관광객, 생업을 해야하는 택시기사 모두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통역을 해주자 일본인도 이제야 만족하는 것 같았다. 사실 자기자신도 지금의 해프닝에 단단히 한 몫한 것임에도 그에 대하여는 전혀 인정치 않았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기사아저씨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자신은 돈 때문에 지구대에 온 것이 아니라 단지 오해를 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돈은 일체 받지 않고 일본승객을 신천의 모텔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승객인데 순찰차 신세를 지게 하는 것은 택시기사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멋진 지구대장님에 멋진 기사아저씨였다. 나는 이제 일본승객에게 어쩌겠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은 5천원정도는 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침에 모텔에서 아산병원까지 8천원을 냈으니 8천원까지도 낼 수는 있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잠실에서 서대문 왕복을 하고도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기사아저씨와 심히 대비되고 있지만 통역으로서는 감정을 표출하여서는 아니되어 꾹 참고 그대로 통역만 했다. 거듭 택시아저씨는 요금은 되었고 통역을 통해서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라고 좋아하셨다. 결코 요금은 필요없다고 다시 통역해 달라고 했다. 일본인 승객은 뭐 자기로서도 공짜는 싫다며 한사코 5~8천원은 내겠다고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통역 개인으로서는 기분도 상하고 시간도 너무 많이 지체되고 있었다. 그래서 다소 월권이지만 좀 개입을 했다. "당신이 모텔에 내려서 요금을 안 내든 5천원을 내든 8천원을 내든 마음대로 하되, 제발 우리의 선의를 기억해 달라고 했다. 왕복 몇 만원이 되는 거리인데 공짜나 8천원이나 받는 쪽에서는 무의미하다. 대신 한국인의 마음을 알아달라. 부디 남은 여행 즐겁게 하시고 오해만큼은 그만하시라"고 했다. 끝으로 지구대장님은 자신의 여동생이 현재 도쿄에 살고 있어서 일본에서 온 손님이라 더 돕고 싶었고 그러니 진심을 알아달라고 전언을 부탁했다. 덮어놓고 바가지사건으로 몰아가는 일본 아주머니에게 아마 그곳 경찰관들께서도 답답하기도 서운하기도 했을 것이다. 일본인은 그 이야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건성이었다. 단지 자기가 당초부터 한도로 잡은 요금 이상을 내지 않아도 된 것에 매우 만족한다는 말로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정말 길고도 씁쓸한 통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