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진 / 일본어
2013.08.06가정폭력 관련 일본통역, 가슴 아프고 힘들었던 세번째 통역.
 
어제 봉사 후기 남기려 들어왔더니, 아무래도 박미영 봉사자님의 전화를 제가 받게 된 것 같네요.
앞 선 두번의 통역봉사는 비교적 간단한 의사소통을 위한 통역이었는데, 어제 받은 전화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수사관련 통역으로 고생하셨던 봉사자분들의 통역후기를 읽은 적이 있어서 최대한 정확하게 통역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저의 미흡한 일본어실력과 수화기 넘어로 전해지는 일본여성분의 목소리가 정확히 들리지 않아, 들은 내용을 계속해서 확인하면서 통역을 진행했습니다.
 
박미영 봉사자분께서 말씀하셨던 것 처럼, 상황은 일본여성과 한국남성 커플 사이에 일어난 가정폭력 사건이었습니다.
일본여성분의 말씀으로는 칼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은, 이 전의 남자친구분께서 폭력을 휘두른 경험도 많았고, 자신의 호신용으로 칼을 가지고 들어간 것이었지 전혀 자살을 하려던 의도는 없었는데, 남자친구는 자신이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등 남자친구가 유리한 쪽으로 변호를 하고, 경찰관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 여성분의 말에 의하면 남자친구는 평소에 여성분의 사생활에 불만을 많이 가지고 계셨고, 남자친구분은 여성분을 폭행 해 이전에 경찰서에 연행된 적이 있었지만,  남자친구를 용서했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랜 통화 끝에 일본인 여성분은 남자친구와 이미 깊은 관계고 자신을 와이프라고 칭하시면서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은 결혼할 예정의 깊은 관계이며, 수차례의 구타를 당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도 둘만의 대화를 통해 화해를 원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일차적으로 일본여성분의 이야기를 듣고 경찰관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는데, 아저씨께서는 저의 이야기를 듣기 전, 사건의 정황과 남성분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셨습니다. (여성분이 자살을 시도하셨고, 남성분은 같은 공간에 여자친구와 있고 싶어 하시지 않는다는 등)
 
이야기를 듣는 내내, 경찰관분께서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부분을 고쳐드리고 싶고 여성분을 변호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팩트만 전달해야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는 것 처럼 흥분해 말이 빨라지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지만, 최대한 여성분이 하고자 하는 말을 최대한 정확히 전달했습니다.
 
경찰관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물어봐주시길 원했고, 일본여성분은 어쨌든 둘의 관계에 경찰이 끼어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둘만의 공간에서 대화를 하길 원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경찰서에 돌아가 이전에 남자친구의 폭행기록을 다시 살펴봐주길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남자친구분이 또 다시 폭행을 시도하려고 하면 그 때는 저번처럼 용서하지 않을테니, 전화를 하면 바로 달려와주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경찰관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남성분은 여성분과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는 걸로 보였고, 남성분은 아무래도 일본여성분을 진지한 관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경찰관 아저씨께서는 남성분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여성분이랑 대화한다고 해서 사이가 좋아질 상황으로 보이질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일본여성분은 남자친구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서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고 있었고, 이번에도 남자친구 때문에 급히 회사일도 제쳐두고 한국에 방문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평소 남성분은 피임을 하지도 않고 성관계를 맺길 원했고, 지금도 임신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인연의 끈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신 걸로 보였습니다.
 
일본 여성분의 이야기를 다 전해듣고, 경찰관을 통해 전해들은 한국 남성분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제가 가운데서 어떻게 여성분에게 상황을 말씀드려야할지 너무나 난감하고 가슴이 아팠고,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최대한 중립을 지키면서 통역을 해야하는데, 왜이리 제 말은 빨라만 지는지.
경찰관 께서는 일본여성분이 전화가 와도 알아들을 수 없어 저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주길 원하셨지만, 휴대폰 전원이 꺼지기 직전이라, 가르쳐 드리지 못하고 BBB로 다시 전화주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두분의 관계가 어떻게 됐든 여성분이 다치지 않고 사건이 잘 정리 되었으면 좋겠고, 이런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