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원 / 러시아어

2016.02.03

외국인 노동자분의 가슴아픈 도움 요청 전화였습니다.

#자택#외국인_노동자

운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비교적 자주 통역 전화를 받곤 했습니다. 뜸한 것 같다가도 하루 걸러 하루, 또 하루 전화가 걸려왔으니까요.

 

1월에는 시험준비때문에 개인적으로 바빴던터라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걸려온 전화의 3-40프로는 부재중에 그치곤 했었고요. 너무나 아쉬웠던 탓에 이후에 걸려 올 통역전화는 한 통도 놓치지 말자, 굳게 다짐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5일에 통역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화 주신 분은 cis 국가에서 오신 외국인 노동자분이셨어요.

매우 급하셨는지 받자마자 러시아어를 쏟아내신 덕에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차근차근 다시 되물었고, 전화주신 이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원도 원주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시는 중이고, 현재 감기에도 걸린데다 어린 자녀 양육문제가 걸려서 다니는 공장의 잔업이 힘든 상황인데 [잔업이라함은 주중 밤 10-11시까지의 근무와 주말 근무를 일컫는 말인 듯 했습니다.] 잔업을 하지 않으면 공장에서 잘릴 상황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과거 관련 문제로 사장과 말을 해 본 적이 있지만 즉각에 거절당하고 듣지 않아도 될 짜증섞인 말까지 들으셨다더군요. 자신이 잔업을 하지 않게 될 경우, 남은 다른 동료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본인 할당량의 잔업을 대신 해야하고 그 분들도 사장에게 구박받을 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감기에 걸리셨는데 한국 약이 듣질 않아 힘들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사정상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하는데,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여쭤보셨습니다.

 

사실상 저희는 그저 의사소통 관련 문제를 해결해 드릴 뿐인 언어 봉사자이며, 말씀주신 관련 분야 전문가는 아니라고 대답드리자 매우 실망하신듯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절박하게 몇 번에 걸쳐 거듭 상황 설명을 주셔서 혹시 해당 도시에는 외국인 노동자센터가 없냐고 여쭤보았고 이미 주민센터쪽으로 가보았지만 비자가 문제 되어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안타까운 나머지 저는 조금만 기다리라 부탁드리고 구글링을 하여 강원도 원주 쪽의 외국인 노동자 관련 센터 주소를 알려드렸고, 발신자분은 주소를 받아적으시고 꼭 이후에 센터로 들러보겠다 하셨습니다.

 

이 후에도 혹시 제게 같은 문제로 상담받을 수 있냐 물으시기에, 저는 그저 랜덤으로 걸려오는 요청 전화를 받는 입장이며 저를 제외하고도 다른 재능있는 통역봉사자 분들이 많으시니 그 분들께 도움을 받을 수 있으실거라 말씀드렸습니다.

 

남편분도 같은 나라에서 오신 분인데다 어린 자녀도 있고 비자문제도 엮여있어 국가기관에서는 도움받기 힘드신 상황인듯 했습니다. 과거 노동청 산하의 지역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오래간 봉사한 경험이 있어서 비슷한 문제를 가진 분들을 수차례 봐왔던지라, 저 분이 느끼셨을 불안감과 절박함이 제게도 고스란히 느껴졌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관련 기관의 지식과, 문제 해결에 관련한 지식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발신자분께 여다른 답변을 드리지 못했던 것 같아 죄송했습니다.

 

혹시 다른 러시아어 통역봉사자 분들 중 저 분의 전화를 다시 받으시는 경우가 있으실까봐 조금 상세히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부디 다음번에도 비슷한 문제로 전화를 주시는 외국인 분들이 계시다면, 해당 문제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진 통역가분께 그 분의 전화가 갔음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ㅠ.ㅠ.....

 

그리고 다시금 bbb korea의 언어 통역봉사자 자리는, 단순히 언어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닌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분들께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 [특히 정책적, 사회문화적 문제] 에 대한 지식을 함양해야하는 자리임을 깨닫는 통화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 앞으로도 오래 언어봉사자로 남아, 그 언젠가 제가 유사문제를 가진 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단 건설적인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