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언 / 중국어
2017.01.15중국어통역봉사 3년만에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네요..
통역이야기엔 늘 좋은 글들만 올라와서, 쑥스러운 마음에 늘 눈팅만 해왔는데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될 줄 몰랐어요.
전 중국어 통역봉사한 지 만 3년이 막 지난 봉사자입니다.
일요일 오후, 날이 추워서 집에서 편안한 휴일을 보내고 있는데 영등포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무단횡단을 한 중국인에게 신분증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아 경찰서에 잡혀와 있으니,
생년월일만 이야기해도 보내준다고 통역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사적인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통역해주는 것이 통역봉사자의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그대로 내용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바꿔받은 중국인이 엄청 화가 난 상태로 제 이야긴 들으려 하지도 않고 본인 말부터 들어보라 하더라구요.
주저리주저리 본인이 화난 것에 대해 하소연하고 있는데, 나이지긋한 목소리의 남자경찰분이 전화길 뺏으면서
본인 이야길 먼저 전해달라더라구요;
"아, 거기 통역하시는 분? 우리가 길게 이야길 들어줘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일단 도로교통법 위반을 해서 신분증을 요구했고 응하지 않아 잡아온 것이고 신분증만 제시하면 바로 풀어주겠다고 먼저 전해주세요"
서로 화난 상태로 본인 말부터 전해달래요.. 엄청 난처했습니다.
근데 중국인이 한 말이 의외였어요.
"공원에서부터 줄곧 저를 따라왔는데, 왜 그렇게 한건지 물어봐주세요"
그래서 부탁한 대로 왜 따라간 것인지 경찰에게 물어봤는데 그 경찰 왈,
"설령 우리가 따라갔다 하더라도 법에 위반되는 사항이 아니고, 만약 신분증 제시를 거부한다면 감옥에 넣을 거라고 전해주세요"
중국인을 상대로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물론, 통역봉사를 하는 저한테조차 굉장히 강압적이고 명령하듯 말씀하셨어요.
게다가 중국인이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지면 전화길 빼앗아 본인 이야기 먼저 하시고..
중국인이 본인 이야길 하고 있으면 동료경찰들과 이 이야기에 관해 소리치면서 대화하는 통에 제대로 통역조차 힘들었습니다.
너무 주위가 소란스러우니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했더니, "소음은 무시하시고 그냥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전문 통역사가 아니지만, 돈받지 않고 좋은 일 하고 있는 봉사자를 너무 얕보는 듯한 대우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예닐곱번 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저도 모르게 경찰분에게 화가 많이 나더라구요.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너무 부끄럽고, 마지막에 그 중국사람이 했던 말이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인권도 없습니까?"
결국 강압적인 태도를 연신 취하던 경찰분께서 다른 통역사를 어딘가에서 데려왔고,
그 중국인에게 설명하는 도중에 "지금 다른 통역사와 이야기중입니다 잠시만요" 라는 말을 듣고, 끊어도 되겠냐 하고 동의를 얻은 즉시
바로 끊어버렸습니다. 전화한 지 1시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기분이 너무 나쁘네요.
재한외국인도, 불법체류자든 뭐든 어찌되었든 한국에 사는 손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아래로 깔고 대하는 듯한 의식은 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화가 나서 주저리 주저리 쓴 중국어통역봉사자의 하소연이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