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 중국어
2017.05.15여자의 일생
경기도 구리시 지구대에서 경찰관이 일요일 저녁 6시 20분 즈음에 전화하셨다. 가정 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해 피해자인 중국인 아내를 데리고 왔는데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이 일마치고 퇴근해 오면 술 마시고 뚜렷한 이유 없이 수시로 구타를 한다고 했다. 오늘도 12시 즈음 퇴근해 술 마시다가 느닷없이 자신을 주먹으로 구타를 했는데 입술이 터진 상태였다. 경찰은 최종적으로 남편의 처벌을 원하느냐고 물었는데 아내는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남편은 아직 지구대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인 아내의 진술을 먼저 듣는 중이었는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단순 가정폭력으로 단정되어 남편에 대한 어떤 조치 없이 귀가하게 되었다. 아내는 향후 어떤 구체적 방어 장치 없이 여전히 남편의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야 할 형편이었다. 사건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통역자 입장에서 구체적인 정황은 알 수 없다. 끊겨진 필름처럼 경찰이 질문하는 내용에만 아내의 답변을 전달하는 형식의 한계이다.
단순 가정폭력으로 귀가하면 어떤 보호조치가 있게 되는지, 남편에 대해 구두 경고조치로 끝나는 것인지, 보호차원에서 일정 기간 격리조치가 되는 것인지... 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아내는 매일이다시피 구타를 당하면서도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국제결혼을 통한 가정 폭력은 bbb 봉사를 통해 종종 접하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국타향 낯선 곳 문화와 풍습이 다르고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편에게 구타당하며 살아야 하는 결혼 생활이 애처롭다.
타문화 권에서의 이질감은 오직 사랑으로 감당해야하는데 그것이 물질과 기타 나름의 조건들을 채워져 맺은 결혼이 그 조건들이 채워지지 않거나 소멸되면 그것이 빌미가 되어 신체적 강자인 남자의 폭력이 시작된다. 오죽했으면 중개인을 통해 생면부지 낯선 타국으로 시집와 여자의 일생을 맡겼나 싶은데 기쁜 것만도 슬픈 것만도 아닐 소설 <여자의 일생> 의 주인공의 고백이 문득 떠오른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더 행복해지기 때문이라는데 가정폭력 속에 노출된 아내가 더 이상 불행하지 않기를...